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파치노 (문단 편집) === 학창 시절 === '''허만 리더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영어]]를 제외한 모든 수업을 낙제할 정도로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바로 이 시기에 뮤지컬과 연극으로 나름 공식적인 연기를 시작했다.[* ABC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하여 춤을 좋아하는 점과 연기 생활의 시작이 뮤지컬이었다고 밝혀 대중을 놀래킨 바가 있다. 아쉽게도 찍어놓은 영상은 남아있지 않다고. [[https://youtu.be/XY7HMQm6CYs?list=PLexTRQstchyMsNJcxM5M2dCqFNBYOuRoP|영상]] ] 12살 무렵에 굉장히 운명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연극이 끝나고 어떤 남자가 다가와 "너는 차기 말론 브란도가 될거야."라는 찬사를 보냈고 그때만 해도 브란도를 몰랐던 어린 알 파치노는 "말론 브란도가 누군데요?"라고 대답했다고.[* 2007 AFI 공로상 시상식 09:25~ [[https://youtu.be/YfNBSZ5P_mY|영상]]] 13살 때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토하는 연기를 하며 실제로 무대 위에 토해버리기도 했다.[* 2016년 알 파치노에게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 중에 이 일화를 밝히며 당시 관객들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짐작도 안간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https://youtu.be/FNRAeHFBDMI|백악관 리셉션 한글자막 영상]]] 중학교를 졸업하고 오디션을 통해 [[페임]]의 주무대로 유명한 '''뉴욕 예술고등학교'''[* High School of Performing Arts, 흔히 PA로 불리는 뉴욕의 공립 예술고등학교이다. 1947년에 설립되었다.]에 합격하지만 역시 잘 적응하지 못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연기를 정말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 너무 어렸었고, 15살이었지만 마치 10살,11살 정도로 뒤쳐진 것만 같았다고. 알 파치노는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자 약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취업을 결심하게 된다.[* 2019년 12월 open 매거진 인터뷰 " I went to a performing arts school and I remember that I loved the things that I learned, but I was too young, I was 15 but I might as well have been 10 or 11, I just was behind.", "I had to quit school and go to work because my mother was ill. So I was living in the Village by myself when I was 16, 16 and a half. I was working odd jobs to make money and support myself and my mother." [[https://openthemagazine.com/cinema/al-pacino-good-life/|링크]]][* Focus On: 100 Most Popular Tony Award Winners의 2017페이지 [[https://books.google.co.kr/books?id=Ss5CDwAAQBAJ&lpg=PA2017-IA50&dq=Focus%20On%3A%20100%20Most%20Popular%20Tony%20Award%20Winners%2Cal%20pacino%2Chigh%20school%2Cpdf&hl=ko&pg=PA2017-IA36#v=onepage&q=high%20school%20performing%20arts&f=false|출처]] ] 그리고 아들의 결정을 반대했던 어머니와 의견 충돌을 빚게 되자 싸움 끝에 결국 가출을 한다. 뉴욕 중심부로 이동한 알은 어머니를 부양할 돈과 연기 공부를 위한 학비를 모으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자전거 심부름꾼을 할 때에는 하루에 11시간이나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이때 맨하탄의 지리를 배웠다고. 버스 보이, 문지기, 우체국 직원 등 정말로 안 해본 일이 없었는데 코멘터리 잡지사의 우편물실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10대 끝자락에 유명 연기학교인 <액터스 스튜디오>에 지원하였지만 고배를 마신 뒤 이탈리아로 향하게 된다. 알 파치노는 이 시절에 대해 스스로 고백하길 "20살 때, 시칠리아에 살던 시절에 저는 제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걸 팔며 생계를 유지했어요. 제 유일한 자산은 바로 몸이었죠." 당시 이태리어도 할 줄 몰랐던 젊은 알은 집과 음식을 제공해줬던 나이든 여인에게 그 대가로 잠자리를 제공했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 자신이 정말 싫었어요."[* 2009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이 때의 일을 밝혔다 "At 20, I lived in Sicily by selling the only asset I had — my body," "An older woman traded food and housing in return for sex. I woke mornings not really loving myself."] 미국 뉴욕으로 다시 돌아온 알 파치노는 결국 유명 연기학교였던 ''''''에 합격하고 첫 연기 스승인 <찰리 로튼>을 만나게 된다. 후일에 찰리 로튼은 알 파치노의 인생 멘토이자 최고의 친구가 되는 인물. 이 시기에 알은 종종 실직 상태이거나 집을 구하지 못해 노숙자 신세가 되곤 했는데, 길바닥이나 극장 또는 친구의 집 등지에서 불편하게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던 1962년, 어머니 로즈가 4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연이어 외할아버지 마저 사망하면서 22세의 알 파치노는 인생의 격변기를 맞이하게 된다. 노년의 알 파치노는 이 시기를 회상하길 "어머니 로즈와 할아버지가 한 해에 같이 돌아가셨던 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이던 시기였어요. 고작 22살이었던 저는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죠. 그 일은 저를 나락에 빠지게 했어요."라고 인터뷰했다.[* 2015년 가디언지 인터뷰. "The lowest point of my life was losing my mother, Rose, and grandfather – they died within a year of each other. I was 22 and the two most influential people in my life had gone, so that sent me into a tailspin."라고 말한 뒤 "I lost the 70s in a way, but then I gave up drinking in 1977 and decided to focus on the work." ] 에서 4년을 공부하고 졸업한 알 파치노는 오디션을 성공적으로 치러 10대 때 한 번 고배를 마셨던 '''<액터스 스튜디오>'''에 입학하게 된다. 전설적인 연기 스승인 <[[리 스트라스버그]]>[* [[리 스트라스버그]](Lee Strasberg)는 알 파치노를 비롯해 [[제임스 딘]], [[더스틴 호프만]], [[마릴린 먼로]], [[제인 폰다]], [[로버트 드 니로]]를 가르친 미국 연기사의 전설적인 인물이다.]를 만나 사사하고 인연을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이곳. 스트라스버그는 후에 알 파치노를 따라 <[[대부(영화)|대부 2]]>와 <용감한 변호사>에 출연하기도 했다. <액터스 스튜디오>에 다니던 이 시기에는 길거리의 극단이나 카페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스스로 극본을 짜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광대로서 쇼를 펼치며 가게 앞에서 직접 호객 행위를 하기도 했다고. 당시 알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우울감에 시달리고 정말로 불행했는데 오로지 코미디 연기만을 하면서 "삶의 구원을 받은 것 같았다"고 이 시기를 회상하며 "뭐든 웃기는 건 좋은 치료법이었어요. 효과가 있었죠. 저는 항상 웃긴 사람들에게 매료되고 그들의 주변에 있길 좋아했어요."라고 말했다.[* 1983년 abc 인터뷰 [[https://youtu.be/T0LsMej_hTE|한글자막 영상]] ] 알 파치노는 "제 인생에서 <액터스 스튜디오>는 정말로 큰 의미를 지닌다"며 "엄청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수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리 스트라스버그]]>의 가르침 아래 연기 커리어를 지탱하게 될 [[메소드 연기]]법을 습득하고 "모든 부업을 그만두고 연기만 해야겠다고 직접적으로 결심하게 된 시기"였다.[* 2006년 발간된 Al Pacino In Conversation with Lawrence Grobel에서 "The Actors Studio meant so much to me in my life. Lee Strasberg hasn't been given the credit he deserves ... Next to Charlie, it sort of launched me. It really did. That was a remarkable turning point in my life. It was directly responsible for getting me to quit all those jobs and just stay acting."라고 인터뷰했다.] 2000년 [* 2000년 6월 뉴욕 타임즈 기사 [[https://www.nytimes.com/2000/06/20/theater/pacino-burstyn-and-keitel-to-lead-the-actors-studio.html|홈페이지 링크]] ] 모교 <액터스 스튜디오>의 공통 대표직을 맡게 된 알 파치노는 2021년 현재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액터스 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heactorsstudio.org/who-we-are/leadership/|홈페이지 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